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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모셔널씨어터 |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전쟁은 끝났지만 후유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 여름 대학로에서 막을 올린 창작 뮤지컬 ‘르 마스크(Le Masque)’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얼굴의 상처’라는 물리적 흔적을 통해 인간 내면의 고통과 회복을 탐구한 작품이다.
실존했던 ‘초상가면 스튜디오(Studio for Portrait Masks)’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은 외면의 흉터를 감추기 위해 가면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가면을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레오니’는 소아마비로 다리에 보조기를 착용한 여성으로, 언제나 타인의 뒤에서 머물러 왔다. ‘프레데릭’은 전쟁으로 얼굴에 큰 상처를 입고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숨긴 남자다. 둘은 초상가면 스튜디오에서 만나 서로의 상처를 마주하며 조금씩 치유의 길로 나아간다.
극의 중심에는 ‘얼굴’과 ‘가면’이라는 상징적 이미지가 있다. ‘가면’은 고통을 숨기기 위한 보호막인 동시에 자신을 다시 세상으로 내보내는 용기의 형상으로 제시된다. ‘르 마스크’는 상처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회복의 출발점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택한다. 장애 극복 서사라기 보다는 살아남은 자들이 서로를 통해 살아가는 이야기로서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르 마스크’는 지난 8월 프리뷰 공연을 시작으로 11월 9일까지 초연 시즌을 마쳤다. 이번 작품은 이모셔널씨어터의 창작 IP 프로젝트 ‘랩퍼토리(LABpertory)’의 첫 결과물 중 하나로, 실험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무대 위 파리의 아틀리에는 조명과 세트의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재현됐다. 부서진 유리창 사이로 들어오는 빛, 석고 가면이 걸린 벽면, 그 속에서 부딪히는 두 인물의 호흡이 정교하고, 과장된 군무나 대규모 넘버 대신 속삭이듯 이어지는 대화형 노래가 극의 감정을 밀도 있게 쌓아 올렸다. 서사적 기복이 크지 않아 다소 밋밋하기도 하지만 의도된 정적으로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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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마스크’가 궁극적으로 던지는 질문은 “우리는 상처를 숨기며 사는가, 아니면 그 상처로 살아가는가?”이다. 레오니와 프레데릭은 각자의 결핍을 인정함으로써 서로의 존재를 완성해 간다. “상처는 감춰도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의 손을 잡는 순간 그 상처는 삶의 흔적이 된다”는 작중 메시지처럼 가면은 더 이상 부끄러움의 표식이 아니라 자신을 다시 세상과 연결시키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초연은 실험적인 시도였지만 재연을 기대하게 하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완성도 높은 음악, 섬세한 무대, 배우들의 진정성 있는 연기는 관객에게 ‘창작 뮤지컬의 힘’을 다시 상기시켰다. 향후 시즌에서 얼마나 더 넓은 무대로 확장될 수 있을지,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된 셈이다.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ppbn0101@newstimes.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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