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T:뷰] 비디오아트의 아버지, 백남준의 작업실로 들어가다

권수빈 기자 / 기사승인 : 2025-03-25 10: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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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서울 광화문 세종미술관이 다시 한 번 거장의 이름을 불러냈다. 3월 초 개막한 전시 ‘로봇드림: 백남준 팩토리 아카이브’는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경계 위에서 평생을 실험했던 백남준의 세계를 되짚는다. 백남준이라는 예술가의 창작 과정을 기록한 방대한 아카이브를 공개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전시는 두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그의 대표작인 로봇 조각이 제작된 ‘백남준 팩토리(Paik Factory)’에 관한 자료다. 두 번째는 그의 오랜 협업자였던 마크 팻츠폴(Mark Patzfall)과 함께 판화를 제작했던 ‘백남준·팻츠폴 판화공방’의 기록이다.

1983년, 젊은 기술자 팻츠폴은 미국 신시내티에서 백남준을 처음 만났다. 이후 1990년대 후반까지 그는 백남준의 손발이 되어 수많은 TV조각과 전자장치를 함께 만들었다. 이번 전시는 그가 보관해온 스케치, 설치 도면, 제작 목업, 사진과 영상 등 300여 점의 자료를 서울에서 처음 공개하는 자리다.
 

마크 팻츠폴. 사진=연합뉴스

 


특히 ‘V-IDEA: a priori’(1984), ‘Evolution, Revolution, Resolution’(1989) 등의 판화는 백남준이 로봇·TV 조각을 확장해 평면 매체로 옮겨낸 실험의 결과로, 그의 사고가 어떻게 시각 언어로 진화했는지를 보여준다.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난 백남준(1932–2006)은 음악과 미학을 공부한 후 독일로 건너가 전자음악의 선구자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 밑에서 수학했다. 1960년대 초, 그는 플럭서스(Fluxus) 운동에 참여하며 미술과 음악, 퍼포먼스를 넘나드는 실험을 이어갔다. 1963년 독일 부퍼탈의 ‘음악의 전시–전자텔레비전’을 통해 세계 최초의 비디오아트 전시를 선보였고, 이후 뉴욕으로 건너가 텔레비전과 비디오테이프를 예술의 재료로 본격적으로 사용했다.

그의 대표작 ‘TV Buddha’(1974)는 부처상이 모니터 속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는 설치물로, 동양적 사유와 서구 기술문명의 조우를 상징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만든 ‘다다익선(The More the Better)’은 1,003대의 TV가 탑처럼 쌓인 거대한 비디오탑으로, ‘영상의 시대’를 예언한 기념비적 작품이다.

오늘날 그는 전 세계 미술사에서 ‘비디오아트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가 처음 제시한 개념 ‘전자 슈퍼하이웨이(Electronic Superhighway)’는 인터넷과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를 예견한 사유로 재조명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2024년 부산에서 열린 ‘백남준 팩토리 아카이브전’의 연장선이다. 부산에서 처음 공개된 일부 아카이브가 서울로 옮겨오며 규모를 확대했고, 세종문화회관이 기획을 이어받아 대중에게 무료로 개방했다. ‘로봇드림’이라는 제목에는 백남준이 일찍이 예견한 기술과 인간의 공존, 로봇 시대의 상상력이 담겨 있다. 그가 만든 로봇 조각들은 인간의 감성과 기술의 만남을 시각화한 존재였다. 이번 전시는 바로 탄생의 현장, 즉 ‘팩토리’의 흔적을 복원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사진=연합뉴스

전시장 한켠에는 1980~90년대 백남준 전시 포스터와 함께 실제 작업에 쓰인 도면, 메모, 스케치북이 놓여 있다. 관람객은 완성된 작품이 아닌 ‘과정’을 바라보며, 예술이란 한순간의 영감이 아니라 치밀한 기술·공학적 설계의 결과임을 깨닫게 된다.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단순히 백남준의 완성작을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라 예술과 기술의 협업이 어떻게 현실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제작 현장의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로봇드림’은 회고전일 뿐만 아니라 기술문명 속 인간의 자리에 관해 질문할 수 있는 기회다. 백남준이 제시한 비전 “기계와 예술은 싸우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노래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디지털 스크린으로 둘러싸인 우리의 일상에서 그의 실험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 전시장을 나설 때 거대한 로봇 조각 뿐만 아니라 “기술은 인간을 위한 예술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남을 것이다.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ppbn0101@newstimes.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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